전시안내

금강목판화연구회展 - 목판화와 시간들 - 2018-05-01
장소 : KBS갤러리
일시 : 2018-05-24 ~ 2018-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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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말

사각! 사각! 나뭇결이 잘려나가는 소리,
칼끝이 지나는 자리마다 새로운 형태가 드러나 나무 부스러기들이 책상위에 한웅큼
쌓일 즈음 그동안 잊고 살아왔던 감성들이 살아나 행복해집니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정신없었던 시간들, 이제는 잠깐 멈추어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며,
느릿느릿 걸어도 보고 가족과 옛 친구들, 주변의 고마운 이들과 함께 아날로그의 감성을
느끼고 공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감사의 계절, 사랑의 계절, 산천의 초목들이 점점 짙어지는 행복한 5월에 전시를 하게 됨을 참여 작가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8. 5. 24
금강목판화연구회 회장 안병란

 

서문

칼이 새긴 시간의 지층을 만나다


목판화 - 그리다
하나의 목판화 작품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흡사 우리네 인생의 여정과도 같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는 무엇을 해야 할지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우리는 끊임없이 인생의 얼개를 짜고 하루의 밑그림을 그려냄으로써 나만의 무늬를 짜나가고 있다. 각자 삶의 씨실과 날실을 얽어매는 방법이 다를 뿐 우리는 모두 나만의 판위에 밑 선을 그었다 다시 그리며 나를 만들어간다. 내가 그려 낸 모양은 어떻게 기록이 되고 시간으로 다시 태어날까?


목판화 - 새기다
아무도 내 방의 공기를 축내지 않는 늦은 밤, 그림자마저 삼켜버린 어둠이 칠흑 같이 판 위에 가라앉으면 벼릴대로 벼린 칼을 눕힌다. 칼이 오가고 파내려 간 흔적대로 하얗게 새벽은 오고 선 위로 또 하루가 지나가면 그 뒤로 서늘한 바람이 남을 것이다. 사각사각 칼이 먹다 버린 나무 밥찌꺼기를 치우고 나자 칼바람이 남긴 흔적 위에서 꽃은 피고 멀리 산 위에 걸린 구름 위로 해와 노을이 다투며 나무는 휘어져 생긴 대로 몸을 푼다. 어디 그뿐이랴. 까까머리 풋사랑도 다가와 인사하고, 옆에 누운 강아지도 일어나 꽃을 물고 웃는다. 이승에서 만난 모든 것들이 저마다 배냇짓을 하는데 어찌 눈 감아 버리고 손끝에서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조우한 세상의 크기만큼 판을 접고 풀며 각을 내니 나는 이제 이 깊은 주름을 바로 잡을 또 다른 판을 만나야 한다. 이 판은 아직 거울 속에 갇혀 있으니까!


목판화 - 찍다
플라톤처럼 자신의 동굴 안에 비쳐진 우상의 탈을 벗기고 억견을 털어버리자면 우리에게는 또 다른 판이 필요하다. 스스로 속된 결을 잘게 부수고 천년이란 세월로 버티어 내고자 하는 순수의 응집, 그 위로 우리는 온 몸을 던져 춤추지 않을 수 없다. 종이가 제공한 그 무대 위에서 성심으로 마지막까지 에너지를 투사해 또 다른 기록을 남기는 자의 손목부터 손끝까지 흐르는 전율! 그 굳센 압박으로 밀려오는 긴장과 종이 밖으로 일탈하는 기대감 사이에 우연이란 찰진 희망이 일렁인다. 우리가 과연 매일이라는 판을 몇 장이나 찍어낼 수 있을까? 수많은 판 사이에 축적된 시간의 단면을 잘라 그 층위를 보여주는 일만이 남은 자는 홀가분하다. 깃털처럼 모여든 천 개의 눈들 사이로 내 꼬리를 잘라 흔들어 보여주마. 이제 현자의 눈빛으로 다가와 꽂힐 그대의 질문을 위해 우리는 금강석에 비문을 새겨야 할 것이다. 판의 숲 속에 남아 있는 나무의 숫자와 그 판에서 한 때 잘 놀았던 자의 이름과 그리고 그 즐거운 순간을 잡아 챈 시간의 얼굴을 기억하자. 판이 그려 낸 그림을 수많은 시간동안 벽화로 남겨 왔던 소박한 이들의 노래에 답하자마자 현현(玄玄)한 빛이 다가오니 이제 우리도 우리의 시간을 찍어냈음을 자랑 스러워해야 할 때가 왔나 보다.


금강(金剛)의 시간으로 피어나다.
2018년 올해 들어 금강목판화연구회(錦江木版畵硏究會)는 벌써 네 번째 판을 짰다. 판화로 맺은 인연을 매년 되새김질하여 전시라는 판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에는 동료작가이신 정장직 교수님의 큰 그늘이 있기 때문이다. 비껴 스쳐갈 수도 있는 삶의 평행선을 판화를 통해 직조해내는 힘이 있으시기에 회원 모두는 판화를 통해 삶에 대한 기쁨과 끊임없는 질정의 도를 깨닫고 있다. 판화를 함께 연구하는 회원들에 대한 사랑으로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그릇에 맞는 새 이름(雅號)을 지어 주는 일에도 신명을 기울이고 계신데 이로 인해 회원 모두는 판화를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 할 것이다. 그래서 금강목판화연구회로 모인 이들은 각자 질박한 나무판 위에 저마다의 세계를 새기며 정진 중이다. 어린 시절 경험했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생명을 목판에 다시금 불러내고 있는 옹대원 전 회장님과 이병주 선생님, 노전우감독님은 그 투박한 각의 기울기를 누구보다도 더 부드럽게 세울 줄 알기에 판화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장 멋지게 즐기고 계신다.

도시적 감수성을 세련되게 구사할 줄 아는 안병란 회장님과 서미라, 박정회 회원은 여성의 서정성을 특유의 분위기로 표현할 줄 아는 소중한 재능을 갖고 있다. 언제나 상쾌한 허브처럼 삶의 내밀한 언어를 과하지 않게 드러내는 그들의 세계가 다양한 표현력을 얻고 있기에 모든 회원들은 항상 즐거운 기대감을 갖고 있다. 금강목판화연구회를 이끌어가는 튼튼한 견인차 역할을 맡고 계신 리명두 전 회장님이야 말로 넘치는 에너지의 화신이 아닐 수 없다. 배접에서 작품촬영에 이르기까지 넘치는 재주를 회원을 위해 기꺼이 풀어주시는 데다 투박한 칼 맛에서 미려한 선들의 조화까지 판화의 카리스마를 펼쳐내는 관록의 힘을 어찌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으랴. 판화라는 새로운 세계에 입문하여 삶의 또 다른 판의 경지를 일구고 있는 강대규, 신금현, 성수진, 원나영 회원의 고군분투에 환영과 격려의 박수가 함께 하고 있기에 금강목판화연구회는 늘 푸르다. 소탈하고 열정이 넘치는 웃음으로 인체 드로잉의 선과 형상미를 판화에 접목하고 계신 장숙희 선생님 또한 제4회 금강목판화연구회전을 빛나게 하는 주인공이다. 세상의 중심에서 각자의 판을 경작하고 있는 분들의 참여도 이번 전시를 더욱 뜻 깊게 하고 있다. 분주한 일상의 번잡스러움을 지우고 먼 길 마다않고 참여하신 이경애 선생님과 송복섭 교수님, 기운 넘치는 에너르기를 멋있게 표현한 석판화를 보여주신 박영 선생님 그리고 언제나 회화의 조형성을 판화에 접목시켜 목판화의 참신한 빗장을 열고 계신 송인선 선생님이 참여하시는 전시이기에 올 해도 금강목판화연구회전은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다. 이 외에도 항상 진자리, 마른자리 가리지 않고 금강이라는 이름으로 인연의 소중함을 지켜가고 계신 많은 회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삶의 마지막 판을 금강목판화 연구회와 함께 하며 목판화를 통해 ‘미의 재탄생’의 희열을 전하고 가신 고 배결주 작가의 작품을 숙연한 기쁨으로 마주하는 이번 전시회에 판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따뜻한 발걸음이 쉼 없이 이어지리라 기대한다.


김경량(목판화를 연구하며 삶을 더 사랑하게 된 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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